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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내 작품을 말한다] 연극 '세자매' 연출 임영웅씨
'세자매' 는 한국 현대 연극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해랑 선생님의 타계 11주기를 맞아 역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인 극단 산울림(2회).박정자(6회).손숙(7회).윤석화(8회)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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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연극인 `3인방' 첫 합동공연
손숙, 박정자, 윤석화씨 등 여성연극인 `3인방'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서 만난다. 이들은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안톱 체홉의 (연출 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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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오프 더 레코드 (33)
33. 10년만의 귀국 마릴린 먼로를 대사관 파티에 초청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약소국 외교의 설움을 극복해 보고자 발버둥치던 임대사가 짜낸 일종의 고육지책(苦肉之策)이었다. 나는 당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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극단 산울림 '밤으로의 긴 여로'
최근들어 연극을 빙자한 음란물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제목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.유진 오닐의 명작'밤으로의 긴 여로'(6월22일까지 산울림소극장)도 이런 선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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극단 산울림 '밤으로의 긴 여로' 20일부터 공연
한국 현대연극의 선구자 고(故) 이해랑 선생의 대표작'밤으로의 긴 여로'가 극단 산울림에 의해 추모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다. 미국 최초의 노벨상작가 유진 오닐 원작(56년 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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극단「산울림」·여배우 김지숙씨 선정
이해랑 연극상과 영희 연극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됐다. 신극의 개척자인 고 이해랑 선생의 연극 정신을 기리고자 유족들이 설립한「이해랑 연극재단」은30일 연극상의 올해 수상자로 극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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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극속의 진실(분수대)
연전에 작고한 이해랑선생의 수필가운데 「얼굴의 참모습」이란 글이 있다. 『사람의 얼굴은 세월따라 흘러 풍화되어 그의 모습을 바꾼다. 두껍게 가려진 많은 가면의 얼굴속에 파묻혀 진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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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회 이해랑 연극상|극단「실험극장」이 수상
제1회 이해랑 연극상시상식이 8일 서울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1백여명의 연극·문화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. 이 상은 연극배우 겸 연출가며 우리나라 신극의 개척자로 89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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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두서 판문점까지… 이찬삼특파원 한달취재기(다시 가본 북한:11)
◎월북배우들 옛동료 안부 물어/촬영소엔 서울대,연ㆍ고대 모형/여우 몸사이즈 묻자 “그런 것 재지 않습니다” 『김동원ㆍ이해랑 아직 일들 합니까.』 『우리가 춘향이ㆍ평강공주 할 때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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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 이해랑씨 추도의 밤
「고 이해랑선생 추도의 밤」이 14일 오후 7시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다. 「셰익스피어」작 연극 『햄릿』 (15∼23일 호암아트홀)을 연출하다 작고한 원로연극인 이해랑씨 생전외 모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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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이해랑 선생 추도의 밤」|14일 유작 『햄릿』도 공연
중앙일보사는 「셰익스피어」작 『햄릿』 기획공연(15∼23일·호암아트홀)에 앞서 14일 오후 7시30분 고「이해랑 선생 추도의 밤」을 갖는다. 추도의 밤은 연극인과 예술원회원 등 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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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대에서 살다 무대에서 영면
8일 오후10시로 「연극인생」을 마감한 이해랑 선생(본명 해량)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「행복한 연극인」이었다고 입을 모은다. 이 같은 이야기는 그가 예술원회장(84∼8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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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기고 싶은 이야기들(3373)|화맥인맥 월전 장우성(92)|국전심사제도 개선
68년 17회 국전 때인가 현초(이유태)가 국전문제로 당시 주관부처인 문공부차관 이춘성씨를 만난 일이 있다. 현초는 찬찬한 사람이어서 무슨 일이든 경솔하게 처리하지 않는다. 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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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340)화맥인맥(59)|문화보호법|월전 장우성
정부는 피난수도 부산에서 이른바 「문화보호법」을 제정, 공포했다. 52년 8월7일 법률 제248호로 공포된 문화보호법은 예술원 설치·관리·기능 등을 뒷받침하는 조항으로 『예술원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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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4)「붐」이는「마당극」…예술성의 정화 기대
이=지난해 우리 연극계에는 연극의 개념과 공간을 확대해 보려는 마당극의 시도가 활발했지요. 봄철 대학연에서의 마당극이「붐」과 더불어 젊은 연출가 임진택씨를 비롯, 극단「76극장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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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극단「신협」
1959년 여름. 연극『왜 싸워』의 소동이 빚어졌다. 『왜 싸워』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치진선생의 원작으로 일제때 연극경연대회에서 작품상으로 총독상을 받았던 연극이다. 유선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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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단「신협」|남기고 싶은 이야기들
한강에 뛰어든 나는 침착하게 앞으로 헤어 나갔다. 수영엔 자신이 있었고 지금도 그때의 실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. 물살이 세어 무양진역 쯤에 가서야 닿았다. 맨발로 걸어 시흥까지 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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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2373)>
해방 뒤 연극계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연출자와 극본이었다. 그 대신 연기자들은 풍성했다. 더군다나 순수 극작품을 쓰는 쪽은 오직 유치진 선생뿐이어서 극본을 대느라 고생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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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2285)제58화 문학지를 통해 본 문단 비사|50년대"문예"지 전후-조광현(48)
8·15 해방으로부터 6·25 전후에 이르는 한동안 이 나라의 예술인들이 얼마만큼 순수한 교류와 우의를 서로 돈독히 했는가 하는데 대해서 한마디쯤은 이야기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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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1447)전국학련-나의 학생운동 이철승
전국학생연맹은 8·15 광복1주년을 기념하는 「독립전취대회」와 「문화예술제」를 주관해 성황을 이뤘다. 문화예술제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행사였다. 연극은 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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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심하고 잠드십시오 박진 선생님|유한철(평론가)
박진 선생님, 막은 내렸읍니다. 홀홀히 떠나셨지만 마지막 밤에는 젊은 연극인들이 모두 모여 선생님의 떠나심을 슬퍼했읍니다. 선생님이 우리나라 연극사의 산 증인인 것쯤은 다 알고 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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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극
연초의 1, 2월은 유류 파동까지 겹쳐 예술계의 대외활동은 한껏 위축되고 부진했다. 그러나 3월 들어서야 활기를 되찾아「시즌·오픈」4, 5월에는 예년과 같은 공연 및 발표를 보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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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봄의 연극계
신극60년을 맞은 극계는 새봄에 접어들어 연극 「세미나」, 합동공연등 다채로운 기념행사와함께 각극단의 통합문제까지 활발히 논의되고있어 주목을받고 있다. 6개극단협의회(산하·자유·실